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1세 (문단 편집) === [[잉글랜드 국왕]] 즉위 === [[파일:external/s3-eu-west-1.amazonaws.com/B001690.jpg|width=300]] 결국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는 전사하고, 윌리엄이 승리하면서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었다. 이때부터 잉글랜드 왕은 노르망디 공작을 겸하면서 프랑스 왕의 신하가 되었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엔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이는 [[봉건제도]]의 특성 때문이었다. 잉글랜드의 왕으로서는 프랑스의 신하가 아니지만 노르망디 공작위는 잉글랜드 왕위와는 별개로 프랑스의 봉신이기 때문에 노르망디 공작으로서는 프랑스 왕의 신하가 된 것이다. 즉, 평소에는 독립왕국인 잉글랜드 왕국의 왕이지만 노르망디 공국에 한해서는 프랑스 [[카페 왕조]]의 봉신이었으므로 세금도 냈다. 또한 이때부터 [[런던]]이 본격적으로 잉글랜드의 수도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물론 [[앨프레드 대왕]]이 데인 족의 침략을 격퇴한 후로 런던을 중심도시로 키웠기에 이미 인구 수로는 이전의 수도인 [[윈체스터]]를 넘어섰고, [[참회왕 에드워드]]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건설한 이래로 종교적 중심지로도 노릇했지만, 잉글랜드 임금의 공식적인 궁전은 아직 윈체스터에 있었다. 그러나 1066년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런던으로 개선할 적에 웨스트민스터로 정궁(正宮)을 공식적으로 옮기면서 웨스트민스터가 행정수도로도 기능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옆의 시티 오브 런던은 상업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